영화&드라마

Beef (성난 사람들, 2023) 주관적인 후기, 결말 포함

냐오씨 2023. 5. 10. 16:11

처음 친구들이 넷플릭스 Beef 재밌다, 꼭 보라고 할 땐 제목이 왜 소고기일까... 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선 싸움, 분쟁을 의미했더라. 추천해준 친구한테 근데 왜 제목이 Beef야? 라고 물어보니 보면 알거라던ㅋㅋㅋㅋ

 

오랜만에 재밌게 본 넷플릭스 TV series Beef. 비행기 안에서 호로록 다 봐 버렸다. 하나 당 30~40분 사이이고, 10개의 에피소드 밖에 없어서 금방 볼 수 있더라. 몇가지 느낀 점을 적어보려 한다.

 

넷플릭스 Beef는 스티븐 연과 앨리 웡을 중심으로 아시안계 미국인들의 이민자로서의 서글픈 삶, 삶에 치이고 멍들지만 숨돌릴 새 없이 바쁘게 달려야 하는 그들의 인생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얼핏보면 복수가 theme인 듯 싶지만 결말까지 달리고 나니 이 영화가 가진 진정한 theme은 복수가 아닌 위로와 공감이라고 나는 해석했다.

 

초반부엔 끊임없이 build up 되는 캐릭터들의 분노와 그들 사이의 텐션 때문에 조금 기빨리고 피곤할 수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끝까지 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대니(스티븐 연)과 에이미(앨리 웡) 사이의 질긴 beef가 어떻게 끝날 지 궁금하지 않나요? 볼지 말지 고민하는 분이 계시다면 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니 추천합니다.

 

에피소드가 시작할 때마다 극중 Isaac을 연기하는 David Choe의 그림이 에피소드의 내용과 연관된 것으로 나온다. 이 인물에 대해선 현재까지도 말이 많다...

넷플릭스 Beef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간략하게 말해보려 하지만 감상평이 줄줄 묻어나올 것 같다ㅋㅋㅋ

스포일러가 다분합니다. 스포일러를 바라지 않으시는 분들은 스크롤에 주의해주세요!

 

이민 2세대로 추정되는 주인공 대니 초는 부모님의 모텔 사업이 망한 후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동생 폴을 케어하며 도급업자 비즈니스(하지만 모두가 그를 핸디맨으로 부른다)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잘 풀리질 않고,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자살을 계획하여 Forsters에 갔다 오던 길에 흰색 고급 SUV 차량과 시비가 붙게 된다.

다들 이런 날이 있지 않나? 정말이지 누구 하나라도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날. 상대 운전자의 뻐큐 사인은 대니의 도화선에 제대로 불을 붙혔고, 이 둘은 Road Rage를 벌이다가 고급 주택의 화단을 망가뜨린다. 대니는 상대방을 잡는데는 실패했지만 차량의 번호판을 외워 운전자가 누구인지, 집 주소는 어디인지 알아낸다. 흰색 SUV의 주인은 바로 에이미. 에이미는 '고요하우스'라는 성공한 플랜트 비즈니스의 오너이자 집안의 가장이다. 에이미의 고급 주택에 찾아간 대니는 복수로 그녀의 화장실 바닥에 오줌을 갈기고 나오고, 에이미 또한 도주하는 대니의 차량 번호를 외워 대니와 그의 비즈니스를 알아내게 된다. 이것이 그들의 질긴 악연의 시작이었다. 그들의 'beef'는 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주변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에이미는 복수를 위해 자신의 직원 미아의 사진을 도용하여 만든 페이크 "케일라" 어카운트로 대니의 동생 폴에게 접근하고, 케일라에게 푹 빠진 폴은 에이미와 전화통화까지 하며 감정을 키워나간다.

아무리 봐도 침착맨을 닮았던 조지(조셉 리) 씨...

사실은 남편 조지와 행복해 보이지만 행복하지 않은 생활을 이어가던 에이미. 일에서 받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와 과거로부터 쭉 이어져온 트라우마가 그녀를 좀먹어가고 있던 상태였다. 부부 상담도 받아보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솔직히 저 장면에서 조지 엄청 답답하더라... 테라피에서 받은 치료 방법 중 하나로 저렇게 둘이 손을 맞대고 30분 동안 쳐다보고 있어야 했는데, 에이미가 용기를 내서 자기 가슴 속에 얹혀 절대 떠나지 않는 바닥의 감정을 얘기할 때 조지는 전혀 도움이 안됐다ㅋㅋㅋㅋ 조지가 나도 우울해져! 넌 혼자가 아니야. 이러는데 에이미가 눈빛으로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라고 말하는걸 너무 연기를 잘하더라. 같이 있어도 이해받지 못하고 나조차 나를 봐주지 않아 외롭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지.

 

그런 에이미에게 폴이 다짜고짜 누가 괴롭혔어요? 그리고 어디로 가야 당신 괴롭히는 상사 패줄 수 있어요? 하는 그 단순하지만 상쾌한 위로는 크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요? 또 뭐가 싫어요? 라는 폴의 질문에 에이미는 멈칫한다. 아무도 그녀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기에. 모두에게 성공적인 비즈니스 우먼 이미지를 쌓느라 반복되는 pretending에 지친 에이미는 처음으로 "I hate pretending that I don't hate things." 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일도 싫고, 아무것도 안하고 싶단 말이야. 라고 어린애처럼 투정부릴 수 있는 상대가 되어준 폴. 그리고 당신은 뭐가 싫냐는 말에 폴도 "지금은 형이 싫다"고 말해준다. 이 형제도 잘 해보려고 노력할 수록 골만 더 깊어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벽, 그리고 선

대니와 폴 형제는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았다. 부모님의 모텔 사업이 망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것은 아이작이었는데, 대니가 그가 유통하는 위조품을 모텔에 보관할 수 있도록 허락했던 탓에 이것이 걸리자 아이작은 감옥에 가고 부모님은 한국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이 때 그 카톡 페이스톡 브금이 들리는데 너무 한국스럽고 반갑더라ㅋㅋㅋㅋ) 부모님을 안심시키는 착한 아들 대니. 대니가 이렇게나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부모님이 다시 여기 계실 수 있도록 멋진 집을 지어주고 싶어서였다.

 

아이작이 감옥에서 나온 후 대니에게 미안하다는 의미로 $20K를 빌려주고 이걸 크립토에 꼴아박은ㅠ 대니는 돈을 갚지 못한다. 아이작은 대니의 트럭 명의를 대신 받아가고 그에게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대니는 다시 비즈니스를 신청할 자격이 되지 않기에 아이작의 명의로. 대니, 폴, 그리고 아이작. 이렇게 Chosen Ones가 결성된다. 폴은 아이작이 함께한다는 것에 큰 반감을 갖지만 대니가 억지로 화해시킨다.

 

폴과 대니 둘이서 비즈니스를 잠시 할 무렵에 한인 교회 찬양팀을 맡고 있는 지인을 영업하려고 대니가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한인 교회에 가는 씬이 나오는데, 찬양을 들으며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대니가 너무 마음 아팠다... 대니가 참을 수 없이 펑펑 우는 장면을 보니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서 슬픔과 서러움을 속으로 꾹꾹 우겨넣었을지, 얼마나 그동안 위로가 간절했을지가 느껴졌다. 이후 대니는 이 인연으로 교회 리모델링을 맡게 된다.


전화 통화 이후 사이가 더 돈독해진 에이미와 폴. 둘은 폴이 에이미가 일하는 고요하우스로 말없이 찾아가버려 만나고야 만다. 에이미의 실제 모습을 알고도 에이미에 푹 빠진 폴은 에이미의 베가스 출장까지 쫓아가는데, 이 때 대니의 트럭을 훔쳐 탄 탓에 야밤에 폴과 아이작, 대니의 체이스가 펼쳐진다. 왜냐하면 그 차에 아이작과 대니가 함께 훔친 건축 자재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 막내는 줘패서 가르쳐야 한다고 꼰대발언하는 아이작한테 대니가 씁쓸한 표정으로 "한 땐 내가 그 애 우상이었는데." 라고 말하는게 너무나도 짠했다. 한 때 그애는 날 높이 평가했어, 하면서 현실의 그들을 반추하는 대니의 눈빛이 너무 인상깊도록 안쓰러웠다.

나는 둘째지만, 내가 어릴 때부터 언니가 하는 걸 다 따라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네이버 아이디랑 비밀번호까지 글자 하나만 바꾸는 식으로 따라했었지. 대니가 착한 아들이었던 만큼 폴을 무지막지하게 챙겼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폴은 렌트비 하나 안내고 대니에게 얹혀있긴 하지만.

 

폴은 에이미와 하룻밤을 즐겁게 놀고, 뒤쫓아온 아이작-대니와 베가스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 대니가 스피치를 하고 있는 에이미를 발견한다. 에이미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요인은 그녀의 비즈니스 인수 건이었는데, 부자에 Forsters의 오너인 조던이 자꾸 term을 쓸듯 말듯 하면서 그녀를 쥐락펴락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베가스 출장도 이 일의 연장으로 온 것이었는데, 마침 딱 둘이 마주쳐버린 것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폴과 에이미 사이의 관계를 전혀 모르던 대니는 에이미를 엿먹이기 위해 질문을 받는 타이밍에 Road Rage 건을 언급하며 트롤링한다. 당연히 에이미는 시큐리티를 부르고 시큐리티에 붙잡힌 대니는 눈 앞에서 에이미가 비웃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이 때 에피소드가 끝나면서 The Offspring의 Self Esteem이 나오는데 그녀의 '넌 나한테 안돼' 하는 손가락질과 너무 잘 어울려서 웃음이 나왔다.

 

둘이 "결국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던 명장면ㅋㅋㅋㅋ

그치만 이 때 에이미의 일도 잘 풀리지만은 않는다. 폴이랑 육체적 관계까지 가졌지만 둘은 파국으로 끝났다. 폴은 에이미에게 큰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 떠나가고, 에이미는 이 와중에 걸려온 조던의 시누이, 나오미의 전화를 무시하는 듯 대응해버린다. 에이미에게 원한을 품은 나오미는 그녀의 뒤를 캐게 되고 대니의 트롤링을 곱씹으며 에이미가 Road Rage의 운전자라고 확신한다. 꼬리가 밟힐 것 같자 대니를 불러내 흰색 SUV 운전자는 다른 사람이었다고 지목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페이를 약속하면서. 이 때 그들 뒤로 지나가던 운전자가 시비를 걸자 둘이 같이 왕왕대는 장면이 킬포인트다ㅋㅋㅋㅋ 대니는 못이기는 척 승낙하지만 조지의 시어머니 후미로 인해 대니의 위증 없이도 혐의를 벗을 방법을 찾자 에이미는 바로 없던 딜로 해버린다ㅋㅋㅋㅋ 결국 단 한 번도 손을 잡지 않은 그 둘.


여덟 달이 지났다. 에이미도 인수가 잘 마무리되어 바라던 대로 가정에서 시간을 주로 보내고, 대니도 아이작의 변호사 비용을 몰래 훔쳐 성공적으로 비즈니스를 일구고 있었다. 심지어 대니는 승승장구하여 자신을 묘하게 낮게 보던 에드윈에게서 찬양팀 리더까지도 뺏어온 상황. 스티븐연의 찬양가를 들을 수 있다. 노래 너무 잘한다!

 

대니는 정보를 얻기 위해 "제인"이라는 가명으로 조지에게 접근하여 친구 행세를 하고 있었는데, 대화 중 대니가 품고 있는 심연의 바닥이 표면적으로나마 드러나자 조지는 자신의 부인 에이미가 그와 아주 대화가 잘 통할 것 같다며, 둘을 소개시킬 자리 겸 초대를 받아 에이미와 조지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한다. 참고로 에이미는 제인=대니인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여기 왜 왔냐며 꺼지라는 눈치를 주는 에이미.

What do you need?
- I just want to know if...  You're like, I don't know, happy and shit.
  All your hard work paid off, right? You're fulfilled?
Why do you care?
- I just want to know if I've got to get to where you are.

ㅠㅠ... 여기서도 짠했다. 그냥 너처럼 될 수 있을까 싶다는 말이...

하지만 에이미의 내면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Everything fades.
Nothing lasts.
We're just a snake eating its own tail.

둘이 잠깐이나마 서로에 대한 앙금 없이 진실되게 커넥트 된, 7화만에 대화를 한 장면이었는데ㅠㅠㅠ 이 둘의 Beef는 끝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대니가 봤다. 폴이랑 만난 '케일라'라는 여자는 사실 에이미라는 증거를. 그녀의 문신을.

 

대니가 집에 오자 폴이 돈의 출처를 추궁한다. 대니는 회피하기 위해 에이미가 Road Rage의 운전자였음을 밝히고, 에이미는 널 이용했을 뿐이라고, 그녀는 그만 잊으라고 한다. 폴은 이용당한 기분을 떨칠 수 없어 조지를 찾아가 본인이 에이미랑 바람 폈음을 말하고 만다. 이미 너무나 위태로웠던 조지와 에이미의 관계는 이렇게 끝나버린다. 대니는 꿈에 그리던 부모님의 자택마련에 성공해 부모님을 모시고 돌아오지만, 하늘은 절대 대니를 돕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 대니는 집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을 절망과 허망함이 섞인 눈으로 바라본다.


이쯤 되면 당연히 에이미가 방화범일 것이라고 의심하겠지만, 놀랍게도 범인은 에이미가 아니었다!

 

집이 불탄 것은 방화가 아니었다. 대니 스스로가 설치한 배선 문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절대 폴한테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대니는 사건 검사 후 방화인 것으로 나타났다, 역시 에이미가 조지에게 사실을 말한 것을 방화로 복수한 것 같다고 거짓말한다. 분노를 주체 못하던 폴을 진정시키기 위해 대니는 "너 훌륭해, 알았어? 잘하고 있다고." 라고, 폴에게 말하는지 혼잣말일지 모를 위로를 건넨다.

Then why do I keep fucking everything up?
- You're not fucking up.
  We didn't fuck anything up, man, okay?

  We didn't.

이 때 클로즈업 된 대니의 눈은 과거를 떠올리는 는 듯, 끌어안은 폴 대신에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사실 대니가 폴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니는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과거 자신의 죄를 끌어올린다. 대니가 숨겼던 큰 잘못, 그건 과거에 폴의 대학교 입학 원서를 몰래 버려버렸던 일이었다. 폴이 자신을 떠나는 것이 무서워서. 나를 두고 너무 멀리 가버릴까 봐. 한 때 형을 우상으로 여기던 동생은 지금은 형의 아이디어를 "구리다"고 일축해버리고, 같이 살자는 형의 제안도 됐다며 자리를 떠나버린다. 혼자 남겨진 대니는 두려움, 외로움,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최악의 선택을 해버리고 만다.


이 와중, 에이미는 방화는 커녕, 조지가 말없이 딸 준을 데리고 사라진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트라우마의 근원지가 되는 부모님 댁을 방문한다.

 

여기서 연출이 조금 무서울 수도 있겠다. 에이미가 보는 환상, 마녀가 나오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그녀가 가지고 있던 공포, 트라우마, 그 모든 것의 표명. 어린 에이미가 목격했던 아버지의 불륜과 매번 일어나는 부부싸움, 그리고 그 속에서 들어버리고 말았던 자신은 원하지 않았던 아이라는 부모님의 발언. 모든 것은 하나의 커다란 트라우마로 빚어져 에이미가 읽은 동화책 속 구절을 통해 눈 앞으로 시각화된다. "Don't misbehave. I'm always watching." 마녀가 늘 보고 있으니 잘못하면 안 돼! 에이미는 후다닥 먹던 캔디를 침대 밑에 숨긴다. 고개를 들어올리자 그녀의 눈 앞에는 마녀가 있었다.

Don't tell mom and dad, please.
- Oh, I would never tell your parents. I can't tell anyone your secrets.

How come?
- Because no one would love you.

그러고 보면 에이미가 무조건적인 사랑에 집착하는 모습이 종종 나왔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딸과의 관계에서. 딸이 주는 사랑이 점점 조건부로 변해가는 것을 느껴가며 (사탕 주면 안아줄게요, 같은) 트라우마가 상기되던 에이미. 시어머니 후미가 손써준 덕에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짧게 대화를 나눈다.

 

George, I'm a bad person. 
I've tried to hide that from you, because... you're not.
You're as good as it gets. That's why I fell in love with you.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좋은 사람인 조지를 사랑하게 됐다니. 에이미는 심각한 자기 혐오 덩어리였다. 에이미가 힘들게 일하여 얻어낸 딸, 남편과 함께 꾸린 단란한 가정 안에서도 스스로를 맞지 않는 퍼즐 피스처럼, 어우러지지 못한다고 여기는 순간도 많이 비춰졌었다.

 

에이미는 딸인 준을 가질 때도, 에이미가 했던 생각은 본인과 조지의 좋은 면만을 물려주는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나의 나쁜 면(구제 불가능한 면)이, 조지의 좋은 면에 희석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For so long, I was worried about passing down all my negative traits.
I really thought I was doing the world a favor by, uh, by not reproducing.

But then I met George. And I thought maybe...
If we could take the best parts of him and the salvageable parts of me...
that we could make something nice.

에이미가 평생을 갈구해왔던 것은 조건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었다. 일 때문에 자주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없었지만, 조던과의 딜 성사를 통해 자신이 그리던 생활에 가까워진 참이었다. 하지만 대니가 "이제 좀 충만해진 기분이 드냐" 는 질문에 그녀는 "모든 건 잊혀져. 그 어떤 것도 지속되지 않아." 라고 대답한다. 무엇을 해도 사라지지 않고 자신의 가슴 속을 짓누르는 그녀의 공포, 공허함, 그리고 불안감은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 없고 들어지지도 없었다. 그리고 에이미가 평생을 열심히 일해 일구어낸 그녀의 가정조차 폴의 폭탄 선언으로 모두 사라질 참이었다. 조지가 이혼을 원했다.


일이 터졌다. 폴에게 에이미가 방화한 것 같다고 거짓말한 탓에 대니는 에이미의 집에 가짜 방화 증거품을 숨길 의무가 생겼다. 사람 좋은 제인인 척 에이미와 조지의 집에 찾아갔지만, 이미 조지는 에이미로부터 모든 일의 정황과 대니의 진짜 정체를 들은 후였다. 화장실을 쓰게 해달라는 핑계로 집 안에 들어왔지만 증거품을 화장실에 숨기고 문을 열자 대니가 마주한 것은 총을 겨누고 있는 조지였다. 어쩌면 이렇게 상황이 꼬일 수가.

 

둘은 몸싸움을 하게 되고, 조지를 해칠 용의는 없었지만 실수로 그가 벽에 머리를 크게 부딪혀 실신하고 만다. 그리고 조지가 부른 경찰이 오고 있는 탓에 상황이 대니를 압박하고 있었다. 재빨리 차에 타서 도주를 시도하는 대니. 근데 뒷자리에서 천진난만한 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준은 아빠가 차에 타 있으랬더니 제인 삼촌 차에 타 있었던 것이다. 나도 이 장면에서 기가 차서 기절하는 줄. 얼떨결에 아이를 돌아보며 "응, 주니야," 태연하게 인사는 건넸지만. 다시 전방을 주시하는 그의 얼굴은 그의 뜻대로 풀리지 않은 상황에 대한 억울함, 답답함, 그리고 그의 귀에 울리는 경찰 사이렌 소리까지 더해 딱 '아, 진짜 미치겠네.' 라고 씌어있었다.


얼떨결에 유아 납치범이 됐다. 조지는 에이미에게 딸이 납치되었다고 알리고, 대니 쪽도 상황이 잘 풀리지 않는다. 지금부터 Beef는 정말 극의 극까지, 숨 쉴 새도 없이 치닫게 된다.

 

그냥 아이를 집에 두고 도망칠 생각이었지만 아이작이 풀려나 (트럭 드라이버가 아이작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기 때문) 집에 쳐들어와 대니가 빼돌린 뒷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한다. 아이작은 에이미의 딸을 보고, 그들에게서 $500K를 요구하는 협박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은 에이미는 조던의 집에 있었다. 조지에게 조던이 구입해간 소중한 다마고 의자를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장 돈을 내놓으라는 아이작에게 에이미는 그만한 돈을 빨리 준비할 수 없다며, 자신이 지금 진짜 억만장자의 집에 와 있고 위치를 알려줄 수 있으니 조던의 집에서 그녀의 소장품들을 훔쳐가라는 정보를 준다. 아이와 맞바꾸는 조건으로. 이리하여 폴, 대니, 아이작, 그리고 바비와 마이클이 마스크를 뒤집어 쓰고 무장한 채 조던의 집으로 침입한다.

 

어찌저찌 바비를 제압한 폴과 대니는 준을 안전하게 에이미의 차로 옮긴 후 도주를 시도하지만 아이작에게 잡혀 저택의 뒤쪽으로 통하는 방에 갇힌다. 이 틈에 나오미와 조던은 패닉 룸으로 도주를 시도하고, 패닉 룸 가동으로 인해 저택의 긴급 경보 시스템이 작동되어 온 저택이 불과 연막으로 가득 차 한치 앞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때 조던의 최후가 공포영화를 방불케 한다).

 

설상가상으로 경찰까지 도착해 집이 포위된 상태이다. 대니와 폴 형제는 가까스로 저택의 밖으로 나왔지만 집 전체를 크게 둘러싼 높은 담벽 때문에 진전할 수 없었다. 대니는 폴을 위해 인간 디딤돌이 되어 그를 위로 올려보내주고, 그가 대니를 두고 떠날 것을 종용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형을 향해 손을 뻗던 폴은 "나 지금까지 너를 끌어내리고 있었어. 내가 네 대학 입학 지원서를 버려버렸어," 라는 대니의 폭탄 고백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대니를 떠난다.

 

그러나 폴이 담벽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경찰이 그를 발견하며 '탕' 소리와 함께 침묵에 잠긴다. 이 장면에 오는 절망감은 정말... 어떻게 대니에게 더 가혹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모든 걸 잃은 그에게 남은 단 하나의 존재까지 뺏어갈 수 있을까, 싶었다. 대니는 동생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된 채 혼란과 절망에 빠져 하수구 통로로 기어나온다.

 

경찰은 범죄자들을 체포했고, 조지는 에이미를 찾지도, 알리지도 않고 딸을 데리고 떠나버린다. 황망하게 도로에 서 있는 그녀의 차 옆으로 대니의 차가 지나간다. 1화에서의 상황이 역전되었다. 에이미는 죽일듯이 대니의 뒤를 쫓고, 그 둘은 중심을 잃고 함께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넷플릭스 Beef의 결말, 그리고 주관적인 감상평

마지막 에피소드. 넷플릭스 Beef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친구가 되었어요. 작중 둘이 진심으로 즐거워서 깔깔 웃은 적이 없는데, 군데군데 사이좋게 토하며 좋다고 웃는다.

대니가 에이미를 굴려버린 탓에 에이미는 다리를 삐었고, 대니는 몸싸움을 하다 팔을 다쳤다. 그들이 떨어진 절벽은 핸드폰 서비스도 터지지 않는 완전한 오지였는데, 길을 찾을 수도 없고 같은 곳을 뱅뱅 맴돌다 지쳐 떨어진다. 나름 식물 전문가인 에이미가 먹을 수 있는 베리를 구해오라고 대니에게 시키지만, 그녀가 '엘더베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독이 든 열매였다. 심신은 지칠 대로 지친 데다 식중독 때문에 끊임없이 구토를 하던 그 둘은 점점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정신을 놓기 시작한다. 싸울 힘도 없는 그들은 땅에 드러누워 서로에게 계속, 계속 말을 걸다 마음의 바닥 깊숙히 숨겨놨던 진심까지 꺼내 보인다.

The day you honked at me, I was trying to return these hibachi grills that I bought to kill myself.
They wouldn't let me return them.
It's like the world wanted me gone.

대니는 폴, 에이미는 조지와 준의 이야기를 하면서 처음으로 속얘기를 터놓는다. 둘 다 가족에게서 완전한 안정감을 얻고 싶었지만 얻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가족 옆에서 항상 마음 한 구석이 움츠러들어 있었다. 나를 있는 봐주길 바라면서 동시에 나의 본모습을 아무도 모르길 바라는 모순적인 심리는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결국 우리는 타인에게서 완전함, 충족감을 얻길 바라지만 그걸 타인에게서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불가능함 뒤를 쫓다 우리는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왜 이렇게 행복해지기가 어렵지?"

 

환각 때문에 서로의 의식이 뒤바뀌는 경험을 한 에이미와 대니는 그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 아무리 애를 써도, 오히려 애를 쓰면 쓸수록 인생은 풀리질 않고 오히려 내가 모든걸 망치게 되는지. 왜 이렇게 나는 fucked up 된 인간인지. 항상, 표면 바로 아래가 꽉 찬 공허함으로 아슬아슬한지. 마치 풍선 같은 게 아닐까? 실체가 없는 압박감으로 표면이 팽팽하게 늘어나 그 텐션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만 있는 기분.

I've never been able to describe this feeling inside of me, but I think that's it.
Catch-22.
Right? It's like a void.
- But not. It's like empty but solid. Right under the surface.
I see your life. You poor thing.
All you wanted was to not be alone. You don't have to be ashamed.
- It's okay. I see it all. You don't have to hide. It's okay.

너는 괜찮다고 다독인다. 나는 너를 이해한다고 포용한다. 이렇게 질기고 질겼던 beef는 드디어 끝나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그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줄 알았지만 전날 밤의 대화가 무색하게도 둘은 함께 아침을 맞이한다.

 

그토록 세상 일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고통스러운 기억 뿐이었지만 둘은 함께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발을 옮긴다. 어쩌면 이게 인생 아닌지. 우리 다들 고통스러운 인생이라지만 아등바등 살고 있잖아요.

 

서로를 부축하며 터널을 지나오다, 빛 반대편에서 조지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아내를 찾아 동분서주한 모양인 조지는 둘의 상황을 오해하고 에이미가 위험에 처했다고 오해해 대니에게 망설임 없이 총을 쏜다. 탕!


이 장면에 대한 감상이 쓰고 싶어서 이 긴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난 어째 이 둘이 이 장면에서 남매처럼, 가족처럼 보이더라.

오랫동안 의식을 잃은 듯한 대니의 병상 옆을 에이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키고 있었다.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진 그 둘이 사이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대니를 살피던 에이미는 둘의 지난 악연을 다시 회상하다, 살며시 대니의 옆에 기어들어가 끌어안는다. 귀로는 대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난 이 둘의 모습이 꼭 가족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형태 같았다.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꼭 달라붙은 그들 뒤로 태양빛이 지나치고 바깥의 네온 불빛이 지나친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에이미는 대니를 꼭 안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대니의 오른손만이 조용히 에이미를 감싸며 드라마는 끝이 난다.


때로는 내 나쁜 선택이, 때로는 인생의 장난인 듯한 나쁜 결과 때문에. 우리는 모두 나를 괴롭히는 인생을 원망했던 적이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특히 안 풀리는 날 울고 짜증내고 분노했던 적이 있지 않은가. 이해와 양보가 삶의 미덕이라지만, 가끔씩은 그게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지 않은가.

 

완벽한 선인도, 완벽한 악인도 아닌 이 둘이 얽히고설키며, 항상 당시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지만 최악의 결과로 돌아오는 인생이 순간순간들이 스노우볼처럼 굴려지고 굴려지는 이야기를 10개의 에피소드만에 잘 풀어냈다. 복수의 끝이 결국엔 공감과 사랑이라는 자칫 진부해 보이는 엔딩도 결국 돌이켜보면 그게 인생의 정답이지 않은가. 우린 결국 이 세상에서 사랑을 원하니까! 특히나 아시안이라면 공감할 포인트도 많고, 시사하는 의미도 아주 깊다고 생각한다. 결국 Beef는 이 세상을 힘들게 살아내고 있는 80년대생들에게 잘하고 있다며 등을 두드려주고 어깨를 쓸어주는 그런 드라마가 아닌가 생각한다. 간만에 좋은 드라마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